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일반대학원 면접을 볼 때, 저와 같이 면접을 기다리던 형을 만났습니다. 만나고 돌아와서, 청년부 지체들에게 “이런 형을 만났는데, 예수님을 안 믿는 것 같아, 형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해줘.”라고 기도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저와 형, 둘 다 대학원에 입학하여, 함께 신림동 고시촌에서 방을 잡고, 대학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때 형에게 교회를 가자고 했는데, 저항 없이 교회를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형이 어떻게 교회를 순수히 따라 나서게 되었는지 들어보니, 그때 형의 인생에 ‘인생의 허무,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였고, 항상 밝게 사는 저에게 ‘무엇인가가 있나보다’ 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밝게 산 것은 아닌데, 주님께서 형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잠시 눈을 가려주신 것 같습니다. 형님과 선영이와 함께(지금의 아내) 학교에서 애오개역 까지, 왕복 3시간의 긴 거리지만, 한주도 빠짐없이 같이 다녔습니다. (형은 저 몰래, 술도 마시곤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은,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수련회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매일 새벽과 저녁으로 기도하고, 산청 시골에 있는 부모님께도 같이 복음도 같이 전하러 갔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전한 목사님이(고향형님) 수원에 교회를 개척해서, 형님과 선영이와 함께(지금의 아내) 주말에는 서울에서 병점(수원) 으로 매주 왔다 갔다 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주중에는 캠퍼스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받고, 전도자를 훈련시키고, 기숙사 신우회에서는 새벽기도회과 저녁모임으로 섬겼습니다. 형과 자주 했던 말이, “우리가 신학대학원을 온 건지, 일반 대학원을 온 건지 헷갈린다.”
저는 대학원 졸업후 코이카로 인도네시아에 2년 반 동안 있었고, 형은 병점(수원)에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신학대학원을 다녔고, 저도 돌아와서 신학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대학 때 섬겼던 문지 교회에서 사역자로 왔고, 형도 저의 소개로 사역자로 와서, 또 같이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먼저 세종에 교회를 개척하였고, 형은 10년동안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이번에 대전에 어느 교회에 담임목사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담임목사 취임식에서 취임사 시간에 형이...“28세 때, 저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주고,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저의 영적 성장을 이끌어준 박지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말을 가장 먼저 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영광스럽고, 기쁘던지요. 지금은 사람 앞이지만,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형이 주님께 말씀드릴 때, 형의 구원의 과정에 제 이름이 언급된다는 사실이 너무 영광이고 기쁨과 감사가 될 것 같아, 가슴이 벅찼습니다.
결국, 내 삶이 주님 앞에 고백될 때, 남는 것은 “나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영혼” 이구나, 깊이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이제 담임목사로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형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도합니다.